외로움 경제: 왜 사람들은 진짜 연결에 돈을 쓰는가
우리는 참여를 극대화하도록 세상을 만들었다. 이제 그 대가를 치르고 있다. 말 그대로, 그리고 비유적으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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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5월, 미국 공중보건국장은 대부분의 사람이 공중보건과 연결 짓지 않는 단어를 쓴 권고문을 발표했다. 외로움이다.
비벡 머시 박사는 이를 전염병이라고 불렀다. 비유가 아니었다. 그는 만성적인 외로움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하루 담배 15개비를 피우는 것에 비유했다. 비만만큼 위험하다고 했다. 그리고 공동체를 지탱하는 나라의 사회적 결속이 조용히 풀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숫자가 그의 말을 뒷받침했다. 잠시 그 숫자들을 곱씹어 볼 만하다.
숫자들
미국 성인 두 명 중 한 명이 측정 가능한 수준의 외로움을 겪는다고 답한다. 가끔 느끼는 고독이 아니다. 정신과 신체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만성적이고 지속적인 외로움이다.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충격적이다. 외로움은 심장 질환 위험을 29%, 뇌졸중 위험을 32%, 치매 위험을 50% 높인다. 우울증, 불안, 약물 남용의 높은 비율과도 연관되어 있다. 미국에서만 외로움으로 인한 의료비는 연간 1,540억 달러로 추정된다.
그리고 이건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영국은 2018년에 외로움 담당 장관을 임명했다. 일본도 2021년에 뒤를 이었다. WHO는 2023년 외로움을 “시급한 세계 보건 위협”으로 선언하고 이에 대응할 위원회를 출범시켰다.
변두리의 통계가 아니다. 거의 모든 연령대, 소득 수준, 인구 집단에 닿아 있는 세계적인 위기다. 그리고 나아지는 게 아니라 나빠지고 있다.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는 어쩌다 여기까지 왔을까?
소셜 미디어는 어떻게 상황을 악화시켰나
여기서는 조심스럽게 말하고 싶다. “소셜 미디어는 나쁘다”는 이야기는 그것이 비판하는 스크롤만큼이나 생각 없는 말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소셜 미디어는 악이 아니다. 먼 거리를 넘어 사람들을 잇고, 정보를 보여 주고, 그렇지 않았다면 들리지 않았을 공동체에 목소리를 준다.
하지만 소셜 미디어의 인센티브 구조는 근본적으로 인간관계와 어긋나 있다.
소셜 미디어 플랫폼은 단 하나에 최적화되어 있다. 참여다. 앱 사용 시간. 스크롤. 클릭. Instagram, TikTok, X, Facebook을 움직이는 알고리즘은 주변 사람들과 의미 있는 관계를 쌓도록 돕는 게 아니라, 계속 화면을 보게 만들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 결과는 연구자들이 폭넓게 기록해 온 역설이다. 소셜 미디어에 더 많은 시간을 쓸수록 사람들은 더 외롭다고 답한다. American Journal of Preventive Medicine에 실린 2017년 연구에 따르면, 하루 두 시간 넘게 소셜 미디어를 쓰는 사람은 30분 미만으로 쓰는 사람보다 사회적 고립을 느낄 가능성이 두 배 높았다.
소셜 미디어는 내가 충분히 연결되어 있다는 착각이라고 부르는 것을 만든다. 친구들의 사진을 본다. 게시물에 좋아요를 누른다. 스토리를 본다. 그리고 뇌는 그것을 사회적 활동으로 받아들여, 친구를 직접 만나는 더 어렵고 더 보람찬 일을 할 동기를 줄인다. 제대로 된 걸 하나도 먹지 않았는데 사회적으로 “배부른” 느낌이다.
플랫폼들도 이걸 안다. 바보가 아니다. 하지만 인센티브 구조를 바꾸면 참여가 줄고, 앱 사용 시간이 줄고, 광고 수익이 준다. 그래서 기계는 계속 돌아가고, 우리는 계속 스크롤하고, 외로움은 계속 깊어진다.
사라진 제3의 장소
1989년, 사회학자 레이 올든버그는 “제3의 장소”에 대해 썼다. 집(첫 번째 장소)과 직장(두 번째 장소) 사이에서 공동체의 삶이 펼쳐지는 공간들이다. 카페, 이발소, 서점, 주민 센터, 교회, 펍, 공원. 특정한 목적 없이, 그저 사람들 곁에 있으려고 가는 곳.
제3의 장소에서 지인은 친구가 된다. 이웃과 마주쳤다가 한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바리스타가 내 이름을 안다. 그런 곳들은 사회적 연결의 기반 시설이고, 수십 년 동안 사라져 왔다.
이유는 잘 기록되어 있다. 교외의 무분별한 확장이 걸어 다닐 수 있는 동네를 없앴다. 자동차 문화가 우연한 마주침을 줄였다. 팬데믹은 재택근무를 앞당겼고, 많은 사람에게 마지막 믿을 만한 사회적 환경이던 사무실을 없앴다. 사람들이 모이던 독립 가게들은 오래 머무는 게 아니라 거래 속도에 최적화된 체인점으로 바뀌었다.
무엇이 남았을까? 많은 사람에게, 특히 도시에서는, 답은 별로 없다는 것이다. 카페에 갈 수는 있지만 모두가 헤드폰을 끼고 노트북을 보고 있다. 바에 갈 수는 있지만 혼자 가는 건 부담스럽다. 가벼운 사회적 연결을 위한 물리적 기반은 무너졌고, 그 자리를 대신한 건 없다.
어쩌면, 지금까지는.
연결 경제의 부상
지난 몇 년 동안 흥미로운 일이 일어나고 있다. 하나의 통찰을 중심으로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의 카테고리가 생겨났다. 사람들은 진짜 인간관계를 만드는 경험에 돈을 낸다는 통찰이다.
증거는 어디에나 있다.
- Timeleft는 낯선 사람들을 매주 동네 레스토랑의 저녁 식사로 연결한다. 전 세계 40개가 넘는 도시로 확장했다. 사람들은 한 번도 만나 본 적 없는 사람들과 저녁을 먹으려고 구독료를 낸다.
- 실험으로 추가됐던 기능인 Bumble BFF는 이제 Bumble 사용자 참여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사람들은 데이트가 아니라 친구를 찾으려고 스와이프한다.
- 경험 경제는 계속 호황이다. 경험(여행, 이벤트, 외식)에 쓰는 돈은 인플레이션을 감안해도 2019년부터 물건에 쓰는 돈을 앞질렀다.
- Common이나 Outpost 같은 코리빙 공간도 성장하고 있다. 주거의 일부로 커뮤니티가 갖춰지기를 원하는 젊은 직장인들을 겨냥한다.
- CrossFit, F45, Barry's 같은 커뮤니티 기반 피트니스 브랜드는 운동 과학이 아니라 소속감으로 수십억 달러 규모의 사업을 일궜다.
이건 유행이 아니다. 시장의 조정이다. 20년 동안 테크 업계는 오프라인 연결을 희생하며 디지털 참여에 최적화해 왔다. 이제 소셜 미디어와 함께 자란 세대가 1,000명의 Instagram 팔로워와 텅 빈 금요일 밤을 바라보며 뭔가 바뀌어야 한다고 결심하고 있다.
그리고 그걸 바꾸려고 기꺼이 돈을 쓴다.
왜 지금인가, 그리고 왜 중요한가
이 순간을 특별하게 만드는 세 가지 힘이 한데 모이고 있다.
1. 팬데믹 이후의 자각. 팬데믹이 외로움의 위기를 만든 게 아니다. 드러냈을 뿐이다. 풍요로운 사회생활을 한다고 생각했던 수백만 명이, 자신의 “인맥” 대부분이 상황이 만들어 준 것이었다는 걸 알게 됐다. 사무실, 출퇴근, 우연한 마주침을 빼면 무엇이 남을까? 많은 사람에게 그 답은 정신이 번쩍 드는 것이었다. 그 자각은 사라지지 않았다. 사람들은 2019년보다 지금 사회적 연결에 대해 더 의도적이다.
2. 세대의 변화. Z세대와 젊은 밀레니얼 세대는 소셜 미디어라는 실험이 실시간으로 펼쳐지는 걸 보며 자랐고, 그중 많은 이가 빠져나오고 있다. 앱을 지우고, 친구 무리를 더 작게 추리고, 젊은 사람들은 화면만 원할 거라 생각하는 이들이 놀랄 만큼 열성적으로 대면 경험을 찾는다. 조사는 Z세대가 윗세대보다 대면 교류를 덜이 아니라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걸 꾸준히 보여 준다.
3. 마침내 오프라인을 가능하게 한 기술. 직관에 반하게 들리겠지만, 사람들을 오프라인에서 잇는 기술은 이제야 대규모로 작동할 만큼 성숙했다. GPS 기반 탐색, 실시간 매칭 알고리즘, 모바일 결제, 앱 내 커뮤니케이션. 10년 전에는 이런 도구들이 쓸 만한 형태로 존재하지 않았다. 이제는 있다. 그리고 사람들을 화면에 붙잡아 두는 게 아니라, 화면에서 벗어나 진짜 사람들이 있는 방으로 들어가게 하는 데 쓸 수 있다.
소속감이라는 비즈니스
공개적으로는 잘 하지 않는 이야기가 있다. 그렇다, 외로움을 중심으로 영리 사업을 만드는 건 도덕적으로 복잡한 일이다. 아마 필요 이상으로 많이 고민했다.
솔직한 답은 이렇다. 그 복잡함을 감수할 가치가 있다고 결론 내렸다. 이유는 이렇다. 외로움의 위기는 의료비만으로도 해마다 1억 5,400만 명의 미국인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런 규모라면 스스로 지속되고, 전 세계로 확장되고, 빠르게 개선되는 해법이 필요하다. 비영리 단체는 중요한 빈틈을 메우지만, 이 문제에 필요한 기반 시설을 만들 수는 없다. 수익을 내는 사업은 할 수 있다.
하지만 안전장치 없는 수익성은 애초에 우리가 소셜 미디어를 갖게 된 이유다. 그래서 Escape가 하지 않을 일들을 분명히 정했다. 이벤트에 참석하려는 사용자에게 회비를 받지 않는다. 커뮤니티를 게임처럼 만들거나 초대장에 인위적인 희소성을 만들지 않는다. 다른 플랫폼들처럼 "참여 지표"를 추적하지 않는다. 우리가 추적하는 건 앱 사용 시간이 아니라 참석과 그 이후의 연락이다. 그리고 사용자 데이터를 광고주에게 파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이건 마케팅 문구가 아니라 반드시 지킬 원칙이다.
우리의 수익은 우리 플랫폼에서 이벤트를 열려고 비용을 내는 커뮤니티에서 나온다. 그들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이미 사람들을 모으는 일에 헌신하고 있다. 우리는 그들이 성공할 때 돈을 번다. 그 일치가 수익 동기를 정직하게 지켜 준다.
이게 완벽할까? 아니다. 하지만 대안보다는 낫다. 외로움이라는 전염병은 커지는데, 문제가 “충분히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원을 가진 누구도 해결하려 하지 않는 세상 말이다. 그 도덕적 무게는 기꺼이 지고 가겠다.
외로움의 해독제는 직접 나서는 것이다
개인적인 이야기로 마무리하고 싶다.
내가 쓰고 있는 그 외로움을 나도 느껴 봤다. 추상적인 사회 문제가 아니라, 사람으로 가득한 도시에서 그 누구도 내가 존재하는지 모르는 것 같은, 구체적이고 은밀한 경험으로. 휴대폰을 넘기다 연락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걸 깨닫는 일요일 오후들이 있었다. 일만이 하루에 틀을 주고, 그 밖의 고요가 귀를 먹먹하게 하던 몇 달이 있었다.
나를 거기서 꺼내 준 건 앱이 아니었다. 상담도 아니었다(도움이 되긴 했지만). 자기계발서도, 명상도, 긍정 확언도 아니었다.
직접 나서는 것이었다. 몸으로. 다른 사람들이 있는 방에. 어색할 때도, 내키지 않을 때도, 집에 있는 게 더 쉬웠을 때도, 몇 번이고 다시.
러닝 클럽에 나가서 누군가와 3주 동안 말없이 나란히 달린 뒤에야 처음으로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눴다.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커뮤니티 저녁 모임에 나가서, 대화가 마침내 풀리기까지 20분 동안 불편한 스몰토크를 견뎠다. 온몸이 늦잠을 자고 싶어 하는데도 토요일 아침 7시 커피 모임에 나갔다.
그리고 천천히, 고르지 않게, 어색한 대화를 하나씩 쌓아 가며, 사람이 있는 삶을 만들었다.
그게 내가 Escape로 만들려는 것이다. 외로움의 치료제가 아니다. 외로움은 어떤 제품 하나가 “해결”하기에는 너무 복잡하다. 다만 가장 어려운 한 걸음, 문을 열고 연결이 가능한 방으로 걸어 들어가는 일을 조금 더 쉽게 해 주는 도구다.
외로움 경제가 존재하는 건 우리가 서로를 위해 나서는 법을 잊었기 때문이다. 해독제는 또 하나의 스크롤할 피드가 아니다. 집을 나설 이유다. 그걸 만들어 보자.
— Hyeseong Jun, 창업자
2026년 4월
